2017년 7월 27일, 미디어 아트 그룹 김치앤칩스의 페이스북 이벤트 공지를 보고 런던의 디자인 스튜디오 필드를 소개하는 세미나에 참석했다.


field website (사진=field.io)


필드는 디지털 기반의 비주얼 디자인 작업을 주로 하는 스튜디오로, 상업과 예술의 사이를 넘나 드는 런던의 디지털 아트 스튜디오이다. 주로 그래픽 영상 디자인에 기술을 연결하여 주로 Generative Art 작업을 하는데, 나이키, 아디디스, 마세라티 등의 클라이언트와 작업했고 작업물 모두가 매력적이다. 여러 이미지를 녹여 인터렉티브한 작업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는데, 자칫 지루하고 감흥없게 여겨질 수도 있는 Generative Art를 음악, 포토그래피, 기술 등 다양한 방식과 접목시켜, 특정 사조나 스타일에 국한되지 않은 작업을 한다. 포토그래피 실력도 대단한데, 가장 극적인 장면을 찍기 위해 들이는 엄청난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팀은 10명 이내로 보였고, 모션 그래퍼, 프로그래머, 포토그래퍼, 비주얼 디자이너 등이 모여 멋진 결과물을 만든다.


Generative Art는 프로그래밍 기반의 예술을 말하는데, 주로 알고리즘을 통해 생성되는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건축, 공간, 제품,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Marcus Wendt (사진=Marcus Wendt)

오늘 발표를 했던 필드의 코파운더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Marcus Wendt 는 스튜디오의 작업물을 소개하기 전 자신이 생각을 전환하고, 영향을 받은 것들을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 독일 출신의 그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프로세싱을 접하면서 Generative Art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바우하우스도 소개되었고, 최초의 모션 그래픽 기반의 작업물에도 큰 영감을 받은듯 하다.


예술과 디자인, 패러다임의 변화

프로그래밍 기반의 디지털 인터렉션 디자인은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이다. 건축과 제품 디자인에서 사용되는 라이노의 플러그인 그래스호퍼부터 오픈프레임웍스, 프로세싱까지 여러 기반 기술이 존재하고, 현재는 오픈 소스 프로젝트가 되어 있기도 하다. 컴퓨터는 인간이 하기 어려운 단순한 반복 작업을 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있다. 프로그래밍은 그 컴퓨터에게 명령을 하는 도구이다. Generative Art가 주목받는 이유는 인간이 손으로 만들 수 없는 시각적 결과물을 표현할 수 있으며,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가치있는 예술을 만드는 도구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간다. 프랑스의 라스코 벽화를 그렸던 석재부터, 연필, 붓 그리고 타블렛, 마우스, 포토샵까지 이제는 키보드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가장 최첨단의 예술 작업물은 바로 프로그래밍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세미나에서는 AI, VR 등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들은 단순히 비주얼에 집중하기보다는 AI, 컴퓨터 비전 등의 최첨단 기술을 예술에 접목시켜 더욱 크리에이티브한 작업물을 하는 듯 보였다. 앞으로 어떤 도구가 사람들에게 영감과 짜릿한 경험을 주고 예술을 만들지 모를 일이다.

(사진=field.io)


디자인 스튜디오

개인적으로는 기술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가 존재하고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관심이 많이 간다. 포스터나 책과 같은 전통적인 그래픽 디자인이나 UX/UI 스튜디오도 아닌, 기존에 보기 어려운 없던 범주의 디지털 아트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의미있는 결과물을 뽑아 낸다는게 정말 대단하다. 물론 디자인 스튜디오의 결과물은 클라이언트의 마케팅 등의 니즈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필드의 놀라운 점은 반복적인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에서 벗어나 스튜디오의 자체 프로젝트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다. 모두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정말 즐기면서 작업하는 모습, 그리고 그 작품을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 모두가 너무 멋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비즈니스 모델에 있어서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디자인 스튜디오가 추구하는 가치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성격이 꽤 다르긴 하지만 스튜디오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도 자본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오히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 이 시대의 위대한 디자이너와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스타트업의 범람으로 기업에 대한 가치와 정의가 바뀌어 간다. 스튜디오는 창업을 한다는 면에서 스타트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스타트업은 대개 사람들의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 혹은 제품을 전달하는 것이고, J 커브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는 스튜디오도 탈바꿈해야 한다고 본다. 스튜디오에게 제품을 만들라는 것은 아니지만, 스타트업의 접근 방법을 적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단순히 많은 인력을 투입시켜 프로젝트 수주량을 높이는 식의 방법은 결과물에 있어서도, 기업의 운영면에서도 망하는 길이라고 본다. 내가 만약 스튜디오를 운영한다면 디자인 작업과 동시에 여력을 키워 제품이나 서비스, 프로세스에 대해 투자할 것이다. 디자인 결과물은 단순한 조형의 조합으로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경험을 줄 수 있다고 본다면 고부가 가치를 지닌 제품/서비스라고도 볼 수 있다.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이지만, 디자인 결과물의 퀄리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원활한 현금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의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 방향이 더 나은 의사결정일 수도 있다.


모델

디자인 학과를 나온 많은 졸업생에 비해 일자리는 한정적이다. 일자리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너무 많다. 일자리의 질도 좋다고 볼 수 없다. 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도 규모가 있는 기업을 선호하고, 스튜디오는 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디자이너에게 롤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많지만 극소수로 보이면서 너무 멀어 보인다. 디자이너에게는 롤모델이 필요하다. 개발자에게는 마크 주커버그, 빌 게이츠가 있지만 디자이너의 롤모델은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 디자인의 태생적 한계를 생각해보면 디자이너의 목표와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나는 필드와 같은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롤모델이 되면서도 목표, 목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필드는 나에게도 특히 의미가 있다. 막연히 생각만 하고 인터넷으로만 접하던 디지털 아트 스튜디오가 작동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고, 생산하는 사람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먼 것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낄 때, 환상은 깨져 현실이 되고 또 다른 꿈이 된다. 나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고, 스스로를 테스트해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