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개발자로 일한지 2년이다. 과거 나는 UI 디자이너로 일했다. 개발자가 된 이후 디자인에 손을 거의 떼다시피 했다. 작년에는 FAROTA 앱의 프론트엔드를 개발하면서 UI 디자인도 함께 했지만, 사실 디자인에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

최근 디지털 + 디자인 스튜디오 commoners에 합류하면서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해야하는 상황이 생겼다. 효자동의 책방 인테리어를 진행하면서 브랜딩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아이디어를 내보고, 그려봐도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일단 툴부터 문제였다. 개발자로 일하면서 라이센스 문제로 Adobe 제품 대신 Affinity 제품을 구매해서 사용했다. UI 디자인은 Sketch나 Figma를 사용했고, 그동안 나에게 복잡한 작업이 요구되지 않았다. 로고 디자인을 위해 Affinity Desinger로 복잡한 형태의 디자인을 그리려고 하니 손에 익지 않았다. 처음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익힌지 12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한 번 익숙해진 툴에 대한 감각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결국 Adobe creative cloud에서 트라이얼 버전의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받았다.

개발자가 된 이후에도 디자인을 매일 보기만 했지,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작업하지는 않았다.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정립했고, 디자인을 보는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작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마치 예술가와 미학자의 다른 성격과 같이 나는 직접 작업하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해석하고 비평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디자인 케이스 스터디

문득 디자인을 코딩 공부하듯이 스터디를 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내가 관리하는 trello의 보드에 리스트를 생성하고 세부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이렇다. 카피해볼 작업을 선정하고, 그려보고, 컬러와 형태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것이다. 이는 분명 코딩과 같이 명확한 인풋과 아웃풋이 존재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내 문제를 파악했고, 해결책이 될 수도 있는 방법으로 시도해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형태와 컬러에 대한 감각이다. 스케치를 오랜 시간 하지 않았고, 손도 굳었다. 현대 디자인에서 머리를 쥐어짜내는 형태만이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손의 감각이 중요한 것임은 분명하다. 따라 그려볼 누군가의 작업이 필요했다. behance에서 Personas (페르소나) 라는 일러스트 작업을 골랐다.

일단 따라 그려보자

일러스트는 쉽게 손에 익었다. 마우스로 슥슥 따라 그렸다. 내가 처음 배웠던 2006년의 포토샵, 일러스트와는 확실히 많이 바뀌었다. Adobe CC 가 나올 시기에 디자인 일을 그만두었는데, 최신 버전의 일러스트는 생각보다 안정성이 있더라.

아웃라인도 확인해보면서 어색한 부분을 수정했다. 색을 넣어보니 그라데이션이 빠져있어서 그려넣었다.

10분 정도 걸렸다. 좌측이 내가 카피한 결과물이다.


내친 김에 하나 더 그려봤다. 두 번째 일러스트는 조금 더 복잡해서 더 오래걸렸다.

컬러

페르소나의 컬러는 색감이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흑인의 피부색은 다 같은 검정색이 아니다. 검정색 안에서 푸른 빛이 돌기도 하는데, 두 번째 일러스트가 그랬다. 배경이 파란색이고, 푸른 계열의 검정색이 이 페르소나의 피부색으로 표현되었다. 첫 번째 그림은 태닝된 백인의 이미지였다. 붉은 피부로 그려진 이 페르소나는 웜톤의 배경과 더 잘 어울린다.

실재로 디자이너는 어떻게 색을 정할까. 뭐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색상환에서 감으로 고르는 장면을 많이 봤다. 컬러를 쉽게 고르기 위한 툴도 많다. 대표적으로 Adobe Color CC라는 툴을 이용할 수도 있는데, 이미지를 업로드하면 대표색을 정해주기도 한다.

실재를 이미지로 추상화하기

일러스트를 따라 그려 보면서 이 작업의 제목인 페르소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작가는 일상속에 흔히 보이는 이미지를 페르소나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그려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작업처럼 특정 이미지를 페르소나화 시킨 일러스트를 그려보고 싶었다.

먼저 스케치를 해봤다. 처음 따라 그린 페르소나를 스케치해보고, 어떤 이미지를 만들지 고민했다. 오랜만에 스케치를 하니 선도 못나 보인다.

처음에는 90년대 이미지를 컨셉으로 잡은 가수 UV를 그려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 인체를 그려보지 않기도 했고, 실재하는 이미지를 단순화시켜야 했는데, 그 작업이 잘 안되었다.

다른 아이디어를 냈다. 예전에 본 조선 시대 사진이 떠올랐다. 조선 사람 이미지를 그려보기로 했다.

그리는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걸렸다. 스케치와 사진을 적절히 참고했다. 마지막으로 컬러를 넣어보았다. 컬러는 현실을 반영하여 선택했고, 그라데이션도 사용해보았다. 머리 뒷 부분의 잔 머리는 표현이 잘 되지 않은 것 같다.

결과

이런 식의 케이스 스터디를 스스로 해본 적은 학교 다닐 때도 없었다. 물론 이 글까지 4시간 동안 작업한 결과물은 일러스트 달랑 한 장이지만, 이런 방법의 케이스 스터디가 디자인에 대한 감각을 끌어 올려줄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을 카피해보면 어떨까 한다.

디자이너에게는 컨셉도 중요하지만, 매력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매력은 대부분 1초 이내에 결정된다. 디자이너는 감각적으로 판단되는 측정하기 어려운 이 가치를 다루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고민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