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쓰는 3D 프린팅 창업 후기

배경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두 번의 창업을 했다. 첫 번째는 멋도 모르고 대학 동기와 시작한 시작한 구제 의류 쇼핑몰. 두 번째는 군 전역 후 스타트업 팀을 찾아 배경화면 기반의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했었다. 물론 모두 실패했다. 그리고 졸업을 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왔고, 지난 2014년 우연한 계기로 다시 대학 동기 두 명과 팀을 꾸려, 짧은 기간 동안 3D 프린팅 관련 창업을 하게 되었다.

3D 프린팅을 접하다

2014년 당시에는 3D 프린팅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혁신적인 기술로 여겨지면서 언론에도 자주 나오던 단어였다. 마침 4학년 1학기 때 학교 창업지원센터에서 일을 했는데, 내가 일하던 사무실 옆에 3D 프린팅 교육 업체가 입주해 있었다. 그곳으로 무작정 들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3D 프린팅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응용할 만한 사례를 자연스럽게 찾게 되었다. 2학기가 되고 다시 교내 창업 센터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운좋게 1학기 때 무작정 들어갔던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3D 프린팅 다루는 방법을 간단히 익혔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관련 지식을 조금씩 얻을 수 있었다.

3D 프린팅을 직접 활용해본 졸업 전시

졸업전시 모형

공간 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졸업을 위해 졸업 전시를 해야했고,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3D 프린팅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다들 걱정하는 모형은 3D 프린팅으로 하면 될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문제는 3D 모델링이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일을 하느라 학과 공부를 집중하면서 공부할 시간이 적었기에, 아웃풋으로 나올 3D 모델링 작업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모델링을 쉽게 하기 위해 꼼수를 찾아나섰다. 내가 찾은 답은 3D 프린팅을 위해 개발자가 만든 모델링 툴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툴은 간단한 이미지를 업로드하면 간단한 쿠키 커터 모델링 파일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디자인에 모티브가 되었던 복잡한 ‘지배적 이미지’ (학과 수업에서 그렇게 부른다)를 업로드하고 엄청나게 복잡한 모델링 파일을 얻게 되었다. 이로 졸업 전시를 잘 마무리 했다.

졸업 전시가 끝난 다음 달, 우연히 친한 동기 2명(유럽 여행에 함께 갔던 친구들)과 3D 프린팅 해커톤과 비슷한 공모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필라멘트와 3D 프린터를 제공하고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한 친구의 생활 속 아이디어와 다른 친구의 3D 모델링, 그리고 나는 디자인과 프린터를 다루면서 3명이 팀이 되어 판교의 콘텐츠코리아랩에 가서 2일 간 개발을 했다. 운좋게 1등을 하고 상금을 탔다. 우리는 그 상금을 가치있는 곳에 사용하고 싶었다. 상금을 포함해 사비를 모아 3D 프린터 한 대를 샀다. 그게 창업의 시작이었다.

아이템

3D 프린팅 사업의 시작

시작은 가벼웠다. 우리는 모두 디자인 대학을 나왔고, 학교에서 과제나 전시를 위해 비싼 돈을 주고 3D 프린팅 모델을 의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3D 프린팅에 대해 생각하던 인식이 있었다. 주로 기계 부품을 대체하는 용도로 여겼고, 가공 처리가 된 깔끔한 플라스틱을 상상했다. 나는 졸업 전시를 통해 얻은 바가 있었는데, 수축 등의 이유로 저가 프린터로 부품을 대체하기엔 사이즈가 조금씩 달라져 약간의 가공이 필요하다는 점과, 거친 결과물을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후가공 작업이 필수라는 것이다. 여기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춘 사례가 바로 디자인 대학이었다. 미대 출신들이기에 각자가 후가공을 할 수 있었고, 예술 작품에 가깝기에 1~2mm 사이즈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3D 프린터를 다룰 수 있고, 한 친구는 3D 모델링을, 다른 친구는 영업 능력이 있었다. 정말 간단히 취업 전 용돈도 벌고 의미있게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조금씩 시작했다. 디자인 대학과 SNS로 간단히 마케팅을 해서 일을 땄고, 의뢰를 받으면 모델링하던 친구가 모델링을, 내가 프린팅을 했다. 작지만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출력소, 그 다음은?

사실 3D 프린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고 실내 디자인에 있어서 확고한 인식이 있었는데, 단순한 클라이언트 비즈니스에서 설계 일을 한다면 한계와 미래는 뻔하다는 것, 다른 무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인테리어 일을 해본 경험에서 느낀 바로 단순 노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테리어 시공 작업이 언젠가는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나는 3D 프린팅 사업을 시작으로 이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보고 싶은 욕망이 었었다. 선배들을 따라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는 뻔한 길 대신, 나 자신만의 다른 길을 걷고 싶었고 3D 프린팅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나는 여전히 UX/UI 디자인, 공간 디자인, 코딩 등 각 분야에 다리를 걸치면서 관심을 두었다. 우리 팀은 다들 나처럼 분야를 정하지 못했거나, 취업을 하기로 결심했더나 군대를 가야했다. 다들 목숨걸고 할 생각이 아니었다. 다들 암묵적으로 언젠가는 해체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의견을 모았다. 단순히 출력만 해주는 사업은 미래가 없으니 다른 시도도 해보자는 의견을 모았고, 3D 프린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만들어보자

우연히 아이를 둔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그림을 인형으로 만들어 주는 동영상을 보았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작업을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출력소 일을 하는 동시에 아이템을 개발했다. 우리 아이템은 간단했다. 아이들의 그림을 3D 프린터로 출력해주자. 그게 우리 아이템의 시작이었다. 역시나 해외에 똑같은 아이템을 가진 스타트업이 몇 군데 있었다. 가격도 비교해보고 출력 기간, 배송 기간 등 우리와 비교해보면서 가져가야 할 장담점을 흡수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자원이었다. 우리가 가진 프린터의 출력 가능한 사이즈도 한계가 있었고, 출력 시간도 오래걸렸으며, 프린터도 부족했다. 우리 프린터는 가장 대중적인 방식인 겹겹이 층을 쌓아 출력하는 FDM 방식인데, 해외 업체는 SLA 방식의 프린터에 색까지 입힐 수 있는 상당히 좋아 보이는 프린터였다. 모델링도 문제였다. 일일이 모델링을 해준다고 가정하자면 아이들의 그림은 너무 다양한 형태로 나온다. 구현 가능할지조차 불확실했고 시간도 장담못했다. 색을 입히는 작업도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우리의 자원으로는 모든 것이 문제였다.

아이두두 로고

문제를 기회로

우리는 고퀄리티의 장난감 대신에 해외 업체에 비해 가격을 1/5 수준으로 낮추자고 의견을 모았고 대신 품질을 낮추었다. 모델링 문제는 내가 졸업 전시를 준비했을 때의 3D 모델링 프로세스를 응용했다. 먼저 아이들의 그림을 이미지로 가져와 단순한 2D 벡터 이미지로 바꾼다. 완전한 장난감 형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바닥이 평평한 계단 형태를 가진 출력 가능한 3D 모델링을 했다. 이 방법으로 5분 이내에 모델링이 가능한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너비는 15cm 정도로 제한했다. 높이는 3cm 정도 되었고, 날카로운 부분을 처리하는 후작업을 포함해 장난감 하나를 출력하는데 2~4시간이 걸렸다.

아이두두 테스트

아는 지인을 동원해 유치원 정도 다니는 아이가 있는 집에서 아이들의 그림을 받아 프린팅 테스트를 해보았다. 결과물을 전달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했고, 지인이 장난감을 전달하는 상황을 촬영한 영상을 보았는데, 나도 뿌듯할 정도였다. 다가올 문제는 명확했다. 바로 ‘색’이었다. 아이들은 색은 어떻게 입히냐고 물었고, 우리는 바로 테스트를 했다. 크레파스, 색연필 등 다양한 도구를 구해 칠해보았는데, 엉성하지만 유분기가 많은 크레파스가 가장 적합했다. 하지만 우리가 일일이 채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예 이 프로세스를 교구처럼 만들어서 하나의 킷으로 판매하자. 그래서 정해진 이름은 ‘아이두두’였다. 우리는 또 미술 교구를 만들었다. 팀원 중 2명은 미술 강사 경험이 있었다. 예를 들어 점을 연결하는 연습장이 담긴 도화지가 있고, 점을 연결해서 형태를 만들면 나중에 우리가 장난감으로 만들어주는 시스템이었다. 동시에 나는 나중에 나올 장난감을 패키징할 수 있는 박스를 디자인했다. 결국 일괄적으로 그림을 받고 일괄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이두두 교재

시장을 찾다

우리는 그림 하나를 장난감으로 만들어주는데 리소스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판단했다. 그림을 그리는 도구를 전달해야하고, 받아와야 하고, 또 모델링, 프린팅, 전달까지 하게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가장 수요가 많으면서도 아이들이 많은 곳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찾았다. 인맥을 통해 미팅을 해보았는데 역시 문제는 돈이었다. 알아보니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는 방과후 특별 활동을 하는데, 작가를 불러 아이들의 캐리커쳐를 해서 집에 가져가는 등의 활동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곳을 타겟으로 잡았는데, 한 번 일을 맡게되면 최소 40개 이상의 장난감을 만들 수 있었고 연이은 입소문을 기대했다. 하지만 역시 돈이 문제였다. 유치원에서 생각하는 가격은 꽤나 적었다. 가격 협상을 어느 정도 했고 첫 거래의 성사가 눈앞에 왔다.

아이두두 캐릭터

비슷한 시기에 우리는 사무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일단은 팀원 중 한 명의 개인 사업자로 등록도 했고 서류 작업도 했다. 교내의 창업보육센터에 문을 두드렸고 그곳의 아이디어 대회에 나가보았는데, 다른 팀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 이 때 미래도 계획했는데 추후 앱을 만들어 앱을 통해 그림을 그리고 결제하면 우리가 장난감을 배송해주는 시스템도 대략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함께 발표했다. 그런데 수상을 하지 못하니 우리 서비스 자체가 별로인가? 좋은 아이템이 아닌가? 정말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를 괜히 만들고 있는건가 라는 의문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결국 보육센터 입주도 하지 못했다.

정말 이 서비스가 좋은건가

우리는 고민을 했다. 아이들의 장난감을 가질 때의 기대치가 있는데, 기성 장난감과 비교하기엔 조악하기 짝이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우리 아이템 아이두두는 사실 대체품이 너무 많았다. 굳이 우리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대안도 많아 경쟁력도 찾기 어려웠다. 굳이 그 돈을 들여서 조악한 모형을 받아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나라면 과연 그 돈을 지불할까?

또한 수익 모델도 문제였다. 사실 이 문제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근시안적인데, 당시에는 모든 상황이 좋게 흘러가지 않으니 모든 걸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우리가 장난감 40개를 만들려면 프린트 한 대로는 최소 160 시간이 필요한데, 투입되는 리소스에 비해 얻는게 적다고 여겼다. 군대도 가야하고, 취업도 해야하는 우리 상황에 굳이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쏟는게 맞는 것인지 의문까지 들었다.

공간 디자인에서의 혁신을 위해 시작했던 3D 프린팅은 커녕 좋아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과 아동 미술 교육을 공부해서 검증도 되지 않은 교재를 사용한다는 것도 아이러니했다. 시작도 문제였다. 문제를 정의한 후 3D 프린팅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3D 프린팅이라는 분야를 먼저 정하고 아이템을 찾는 바람에 꼬여버렸다. 3D 프린팅이라는게 요즘 많이 나오는 인공지능과도 특성이 비슷하다. 인공지능이나 3D 프린팅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분야에 접목시켜 어떻게 그 분야를 효율화시키고 혁신시킬 수 있다는 점에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대단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이야 나는 개발자로 일하고 있지만, 당시 우린 모두 같은 디자인과를 나온 학생이고, 백수였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긴 했지만 기술적으로 핵심 역량을 가진 인재들이 모인 것도 아니었다.

아이디어 대회에서의 좌절도 조금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판단했을 때 우리는 실제 업체와 계약도 앞두고 있고 나름 탄탄하게 프로세스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 전의와 동기를 조금 상실하긴 했다. 특히 사실상 팀을 이끌고 있는 내가 조금 흔들렸던 것이 문제이기도 했다. 학생 신분도 아닌 백수 신분에, 팀원 중 한 명은 취업을 원했고 다른 팀원은 군대를 가야했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감도 꽤 떨어졌고, 우리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결국 유치원과의 계약 건은 우리가 먼저 거절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짧은 프로젝트는 끝이 났다.

그리고 지금

2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도 아쉽다. 로켓이 되어 큰 성장을 할 수 있지는 않았겠지만, 지금도 3D 프린팅 분야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자원이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는 우리 상황에 딱 적합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에게는 그릿(Grit)이 없었다. 애초에 가볍게 시작했기에 치열하게 밀어붙일 끈기가 없었고 결국 용돈벌이로 끝났다.

특히 내 비전이 너무 거창했다. 내 비전은 공간 디자인 업계의 변혁, 혁신이었는데, 그건 3D 프린팅을 다루는 사람이 아닌 기계/전자 공학적인 개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가질 수 있는 비전이었다.

멤버 중 한 명은 결국 군대를 갔고, 반 년 후 전역을 앞두고 있다. 다른 친구는 공간 디자인 일을 하고 있고, 나는 내가 늘 창업 후 부족하다고 여기던 기술이라는 분야를 택하고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사업이 제대로 마무리 되진 않았지만 우린 모두 친구이고, 자주 모이고 잘 지내고 있다.

그런 우리가, 내가 또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항상 주변의 문제를 찾고 있고, 공간 디자인에 대한 비전도 가지고 있고, 또 기술력을 쌓기 위해 일하고 있다. 이게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정말 필요한 곳에서, 디자이너답게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가치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