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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가 되기까지

· 약 5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전공은 디자인이고 미대를 나왔는데 어떻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지를 꽤 자주 물어보곤 한다. 그럼 나는 선택을 한다. 20년에 가까운 스토리를 압축해서 대답해주거나, 아니면 주요 마일스톤을 중심으로 조금은 길게 설명하거나. 둘 다 확실하게 궁금증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들어본 나는 어떤 나만의 결론이나 관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해서 회고를 한번 쯤 해보면 어떨까 싶어 이 글을 작성한다. 개인사 중심으로 매우 주관적으로 작성한 긴 글이다.


10대 후반에 선택, 결정한 진로를 60대까지 약 40년을 지속해야하는 것은 소수의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마치 한 번 선비로 태어났으면 선비로 사는 조선과, 태어날 때 골품이 정해진 신라의 그것과도 같다고 할까. 대부분의 고등학생은 대학 또는 취업 진로를 곧 생의 모든 것처럼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자율 전공이라는 제도도 있다. 진로를 탐구하는 시간을 구조적으로 주어 나에게 맞는 미래를 찾아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다. 아쉽게도 나에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자율이라는 혜택 역시 학업 성적에 따른 결과로 주어지니, 소수에게만 해당된다. 내가 선택해야 할 시기에는 있는지 조차 몰랐고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


결정이란 무엇으로 이루어질까? 연역적으로 가정해보자. 개인이 겪은 수많은 물리적, 논리적 정보나 사건을 지식 베이스로 삼아, 이것이 장기 기억이나 단기 기억으로 저장되어 '나'를 구성하고 결정의 주체가 된다고 보자. 입력은 선택해야 하는 시기의 의사결정 아젠다이고, 출력은 그 결과인 판단이다. 이 결정은 다시 재귀적으로 내 지식 베이스에 업데이트되며, 이는 곧 나의 성장이 아닐까?

좋은 결정을 하려면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좋은 경험과 인풋을 통해 탄탄한 지식 베이스를 갖춰야 한다. 10대 때의 나는 부모님의 개입 없이 디자인이라는 진로를 선택했다. 되돌아보면 막연하게 미래에 괜찮을 것 같은 즉흥적인 선택에 가까워 보인다. 내 결정을 이끌었던 테마는 "만들기"였다.


나는 어릴 시절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기억이 안나지만, 집 안의 물건들을 파헤치고 탐색하면서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던 에피소드도 들어보았다.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도 늘 칭찬받으며 자랐는데, 이게 오히려 선택을 꽤 다른 방향으로 하게 만든 것이다. 만들기=미술인가? 만들기는 행동이고, 행동의 결과물은 음악이 될 수도, 회사가 될 수도, 엔지니어링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자본에는 경제적 자본뿐만 아니라 사회 자본, 문화 자본 같은 유형도 존재한다. 지방 중소도시에 살던 나에게는 양질의 조언을 해줄 멘토가 부재했고, 내 적성을 깊이 들여다봐 줄 어른도 없었다. 10대의 내 세계에서 '만들기'는 곧 미술로 한정되어 있었다. 결국 그 한계 속에서 진로를 선택했다.

대학생 3학년 2학기 때 가구디자인 수업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가구를 디자인하는데, 문화자본의 벽을 크게 느꼈다. 여러 주제를 구조화하고 정리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른 학우들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이 이런 브릴리언트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했지라는 생각을 꽤 했었는데, 그럼에도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 때 했던 디자인을 다시 보면 꽤 엔지니어링스럽다. 기능 중심의 요구사항이 있고, 테스트케이스도 존재한다.

자본주의에서 선택, 의사결정은 곧 자본, 시간이다. 네비게이션에서 이 고속도로를 타느냐, 국도를 타느냐의 선택에 내 시간의 소비량이 달려있다. 내 19살의 선택의 결과는 어떨까. 운이 좋았다. 어릴 때 선택이 어렵기에 시행착오나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데, 하필 내가 속한 학교의 공간디자인 분야는 컨셉과 철학적 사고를 중요시했다. 실무보다 사유를 더 중요시했고, 그것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에 좋은 영향을 받아 동서양철학과 같은 인문학 연구를 오히려 집중하게 되었다. 그래서 관념적 확장이 빨랐다. 인문학으로 시작해 과학적 사고로 이어지고, 역사적 구조를 이해하고 세계관을 갖게 된다.


IT 분야는 10대 천재들이 꽤 자주 등장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늦깍이다. IT를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군대에서 군 부대 홈페이지를 만들면서이다. 스마트폰이 나오던 시절인데, 스마트폰 빅뱅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전역 후 앱을 만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학생 때부터 외주를 시작했는데,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습지의 홈페이지를 수주받고, 디자인을 하면서 개발을 시작했다. 스타트업 인턴도 해보면서, 창업 멤버로도 함께해보며 경험을 쌓았다. 휴학하고 중국에 가서 3개월 간 카페 디자인을 하면서 생활한적이 있는데, 그 때의 머릿속에는 온통 공간을 IT로 접목시키는 아이디어로 가득했다. 결국 못 참고 국비 지원 학원에 가서 앱 개발을 배운다.

공간 디자인 분야를 기술 분야와 비교하다보니 설계에서 대부분이 결정되어버리는 디자인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출시 후 피드백 루프를 통해 개선, 업데이트를 반복하는 것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졸업 후 디자이너로 잠깐 일하다가 결국 개발자로 전직을 하게된다. 나는 피드백을 해줄 어른을 찾아다녔는데, 경영학과 교수님, 주변 선배, 특강에서 만난 분들, 학교 교수님 등 당시 모든 사람들이 말렸다. 답정너라고 할까. 결국 스타트업에 취직해서 지금 함께 일하는 조직장님을 만난다.

이후 나는 뒤늦게 시작했다는 생각에, 남들의 두 배의 노력을 한다. 기회비용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벼락치기가 필요했다. 회사에서는 실무를 하고, 집에서는 실무를 다른 분야에 한 번 더 적용해보는 방향으로 학습과 구현의 싸이클을 반복한다. 외주를 여러번 반복하며, 디자인 회사를 창업한 대학 동기와 함께 레드닷 어워드의 위너가 되기도 했다. 결국 어린 시절 상상한 만들기는 디자인일 수도, 미술일 수도,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일 수 도 있다.


약 10년 전,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핀테크, 이커머스 분야를 거쳐 최근 4년 간은 모빌리티 도메인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프론트라는 화면에서 벗어나 백엔드부터, 엣지 컴퓨팅, 인프라를 넘나들며 기여와 성장을 반복해왔고, 트래픽 제로에서 시작해 지금은 일 9천만이 넘는 HTTP 트래픽과 15억이 넘는 이벤트 트래픽을 다루며 파트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성장한 것은 감사하게도 좋은 리더와 팀을 만났기 때문이다.

현재는 워크플로우를 이해하고, 정의, 구현하는 AX 분야를 리딩하기 위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만들기'의 본질이 도구에 국한되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